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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yleebooks   home Thursday, 06-08-10 ( 4953h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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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3. 싱가폴 일기: 또다시 시작 [Ko]


7월 16일 싱가폴 시간으로 새벽 한시에 창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택시 창문 너머로 가로등 불빛에 비친 열대림의 실루엣이 빠르게 지나간다.


본의 아니게 삼년에 한번씩 대륙을 갈아타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또 다시 이 곳 싱가폴, 집도 절도 없는 이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삼년이란 숫자는 묘한 숫자이다. 삼년쯤 지내다보면 이제 그곳에서도 연결고리가 생기고 그간 맨땅에 헤딩하듯 무조건 부딪혀 뿌려놓은 것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젠 그곳에서 ‘살아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여러가지 모순되는 감정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이곳에 계속 또아리를 틀고 살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다시 새로운 어떤 곳으로 떠나가고 싶다는 생각. 더 이상 이방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동시에 이방인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복잡한 감정.


이방인만이 가질 수 있는 눈이라는 것이 있다. 이방인의 눈은 그 삶 속에 있는 이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발은 담그고 한 발은 빼고 있는 상태, 언제든지 떠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그 삶을 구경꾼의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구경꾼적인 태도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더욱 의식하게 하고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만든다. 흘러 들어온 것들은 ‘정보’의 차원에서 처리되고, 고이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간다. 나는 그 안에 있지만 그 안에 있지 않다. 바깥에 서있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식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과 사람들의 일부라는 안정감, 마음의 평온 따위는 없다. 주기적으로 찾아 드는 외로움, 발 딛지 못하고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은 느낌 따위가 문득 커다란 파도처럼 몰려 올 때는 감당하기 어렵다. 나는 언제든지 떠나갈 사람이므로 이곳에 내 것은 없다. 떠도는 이의 머리 속엔 파편적인 단상만이 남아 있을 뿐, 그 곳에서 오랫동안 몸을 잠그고 살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감성이나 태도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았는데. ‘방랑’이란 말만큼이나 얼마나 낭만적인 생각이었는지.
고작 요만큼 돌아다니며 살아보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요즘은 마음을 붙이고 사는 터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뭔가 삶의 태도를 결정해야 될 것 같다는 내 안의 무언의 압력이 느껴진다. 어떻게 살 것 인가. 뿌리 내리겠는가, 이방인으로 남겠는가?


너는 흙(土)이 없는 팔자구먼. 땅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못 붙이고 떠돌아 다닌다는 이야기지.라고 오래 전에 한 친구가 이야기 했었다. 사주 풀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그러므로 마음을 못 붙이고 떠돌아다니는 것에 더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떠나고 옮겨가게 되는 것까지 포함하는 팔자 풀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이렇게 인생이 풀리는 것을 더욱 흥미롭게 지켜보아야 하지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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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폴은 신기한 나라이다. 전철이 들어오니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라는 안내 방송이 영어, 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 이렇게 네 가지 언어로 차근히 흘러나온다. 아니 이 문화적 충격이라니. 여태 서양물만 들입다 먹은 나에게 이 동남아시아의 쬐끄만 나라가 주는 파장은 매우 클 전망.


아시아다. 그러면서도 네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복잡한 종족에다가 넘쳐 나는 외국인까지 합해져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인간의 종류만도 너무 다양하다. 요즘은 사람 구경만으로도 바쁘고 행복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한가지 씩 발견하는 기쁨은 바로 지금, 어리버리한 요 몇 달의 기간 동안만 유효한 기쁨일 것이므로, 위에서 거창하게 썰을 풀긴 했지만 - 사실은 이방인의 시각이고 나발이고 ^^ - 그저 즐기면서 돌아다녀 볼 생각.


또다시 시작.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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