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Suzy Lee's travel sketches, drawings, photographs and writings.

 


*
suzyleebooks   home Monday, 07-03-26 ( 6184hit )
NOTE_korean.jpg (26.4 KB), Download : 90
'검은 새' 노트 [Kr]


# 1
어느 여름 날, 푸른 잔디밭 위를 또각 또각 걷고 있는 까마귀를 보았다.
미국은 까마귀란 놈도 저렇게 덩치가 크군. 하고 있는데 그 놈이 갑자기 푸드득 날아올랐다.
순간 번쩍.하며 검은 날갯죽지에 푸른 빛 한줄기가 반사되는 것을 보았다. 참 아름다운 검은 색.


#2
가슴속에 간직해두고 있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그 중 한가지는 장자의  붕새(鵬鳥) 이미지.
두터운 바람을 타고 한번 날개를 펴면 온 천지를 뒤덮고, 날갯짓 한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붕새. 그 높은 곳에서 거대한 날개를 펴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내려다 보면 속세의 일들은 다 부질없을 터.


#3
“난 커피를 싫어해. 난 밤 아홉시에 침대로 가야하지만 사실은 여덟시에 잠들고 싶어요. 우리 엄마아빠는 헤어질 거에요.” 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검은 새’는 이 세가지 서로 연관 없는 모티브들이 연결되어 시작되었다. 한가지 더, 앞서의 글에 썼지만, 하필 그때 석판화를 시작했다. 크레용의 거친 선들이 겹치고 겹쳐 참 평평하고도 깊은 검정이 찍혀 나오더라.
깊고 깊은 검은 색, 까마귀, 거대한 붕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아이.


제일 처음 만든 이미지는 한국에서 출간된 ‘검은 새’의 표지로 쓰인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본문에서 책의 중간 쯤 놓인다. 그 이미지를 중심으로 앞 뒤로 이야기와 그림의 살이 붙었다. 검은 새의 넓은 등, 날갯죽지 안에 바람을 가득 머금은 검은 새. 검은 새는 단단하게 만져지는 물리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선들이 뭉쳐 만들어진, 바람에 풀려버릴 수도 있을 성긴 연기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화면에서 검은 새의 형체는 다소 모호하다. 검은 바람의 일부랄까.


아이는 어렴풋이나마 감지하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럴 때 누가 꼬옥 안아주며 차근히 이야기 해주면 좋을텐데, 어른들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한다. 그저 불안하다. 그래서 슬프다. 탁 트인 하늘을 향해 쏟아내며 날려버리고픈 느낌이 간절하다. 그때 검은 새가 나타난다. 그러나 검은 새는 단지 아이의 마음을 무심히 건드리는 매개자 일뿐,  검은 새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
아이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없다는 것도 막연하게 느낀다.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화할 뿐이다.


무지하게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시커먼 책이다. 원래 내가 만든 맨 마지막 장면은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아이가 서있는 오른쪽 편 문틈으로 여전히 우울한 엄마가 홀로 앉아있는 것이었다. 내가 날아오르건 어쩌건간에 다시 돌아와서 마주친 현실은 그대로더라는 말이다. 그런데 편집자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슬플 때 가장 슬퍼요. 그 말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너무 가혹한가. 그 장면을 잘라내기로 했다. 그렇다고 덜 우울하지는 않다. 그냥 원본보다는 조금 덜하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보고 아이들이 커다란 위안을 얻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슷한 상황에 놓여져 있는 아이의 상처를 더 건드릴까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책을 시커멓게 만들어놓고 힘내라고 말한다면 참 어이없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림책이 꼭 위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당장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장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앉아있다가  어느 날 문득 손에 잡혀 가슴을 훑어내리게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그것이 어린 아이든, 그런 아이였던 어른이든 간에 말이다.


현재 내 수준에서는 그냥 아이들이 그림의 힘 속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의 모든 정신적 오감을 자극하여 행여나 다양한 그 어딘가로 멀리 뛸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검은 새’는 그림에서 출발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것을 ‘표현’해 내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가슴을 치고 들어가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단지 이 새까만 그림 들 속 어느 순간 속에 푹 빠져 한껏 가슴을 펴고 바다위로 끝없이 날아가는 느낌, 그 카타르시스를 잠시나마 가졌다 라고 말해준다면 참으로 고마운 독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 '검은 새' 노트, 이수지













  list          
 그림·책·디자인 展  
 More reviews: 'The Zoo' (U.S.A.)  
 Alice Theatre Card  
 <북 아트, 그림책> Artist's Statement  
 '검은 새' 노트 [Kr]  
 로저 뒤바젱의 글 [Kr]  
 Reviews for 'The Zoo' in U.S.A.  
 News: French rights sold  
 <검은 새>와 인쇄 역사 박물관 3 
 NEW BOOK: "L'oiseau noir"  
 North American Rights Sold  
 Reviews:<동물원>에 대한 서평 세 편 [Ko]  
  list    [1][2][3][4][5][6][7] 8 [9][10]..[12] >>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E*so
All images copyright © Suz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