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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yleebooks   home Thursday, 07-01-11 ( 8645h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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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새>와 인쇄 역사 박물관


‘검은 새’와 미국 휴스턴 인쇄역사박물관(The Museum of Printing History)



‘검은 새’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이 책은 휴스턴에서 나의 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 인쇄역사박물관 (The Museum of Printing History)의 추억과 함께 한다. 철수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철수? '철수'란 이름은 내가 그냥 부르는 이름이고, 본 이름은 찰스 크라이너 (Charles. E. Criner). 박물관에 있는 석판화 프레스를 쓰게 해주고 가르쳐 준 인쇄 역사 박물관의 resident artist이다.


처음 낯선 미국 땅에 덜컥 떨어져 놓으니, 어떻게 작업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 거리였다. 우연히 이 인쇄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저 어떤 식으로든 첫번째 소스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일단 지도를 구해 무작정 가본 곳.




>아담한 인쇄역사박물관 판화 스튜디오 전경


작고 아담한  박물관, 컬렉션은 소박하지만 정겨운 느낌을 풍겨서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나름대로 오래된 프레스들과 인쇄물, Letterpress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코너를 도니 전시의 일부로 Lithography Studio가 있었다. 훅 풍기는 판화 잉크 냄새. 분주한 느낌. 누군가 이곳에서 실제로 작업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 판화 수업을 들으면서 아주 간단한 석판화 작업을 해보긴 했었지만, 그것은 실제 돌을 갈아내고 그 위에 그리는 것이 아닌 아연판을 이용한 것이었다. 한때 도미에 (Honoré Daumier)에 열광했고, 그 이후 유난히 필력이 강조되는 석판화의 매력-거친 돌의 질감을 이용한 회화적인 느낌이 풍부한 석판화를 언젠가 원 없도록 해보고 싶었던 나는 그 석판화실을 보고 흥분, 또 흥분.


이후 박물관의 또 다른 resident artist 를 통해 징검다리로 철수를 소개 받았다.  처음 만난 날, 철수는 막바로 내 이름을 듣고 “Oh, Suzy~Q !” 하더니, 판화 찍고 싶음 언제 든지 와라. 하고 말했다.
음....그럼 판화시설 이용비 같은 것도 있나? 조심스레 물었더니, 잠깐 고민하더니만..어떻게 돈 받아야 할 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와라. 한다.


보통 사설 판화 공방들이 시간당 얼마나 호되게 값을 매기는 지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것을 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이게 웬 떡이냐.
그러더니만, 이후 작업을 시작하자 철수는 큼지막한 석판도 그냥 내 주고 기타 재료—아라빅 검과 에칭 액 등등에 심지어 종이까지 그냥 주었다. (종이까지는 너무 한 것 같아서 내 것은 내가 사겠다고 힘겹게 설득해야 했을 정도.)
박물관 자체도 한산하여 관람객도 별로 없고, 어쩌다 관람객들이 들어도 심각한 표정과 멋있는 포즈로 열심히 작업하는 척 하면 되었기 때문에 작업환경으로선 최적이었다.


철수도 내가 아마 여늬 호기심 많은 관람객들 마냥 한두 번 끌적거리다 가려니..했던 것 같다. 내가 꽤 진지하게 달려들어 눈에서 광선이 나가도록 작업하는 걸 보더니, 그 이후론 정말 열의를 가지고 가르쳐 주었다. 널럴한 박물관 운영팀도 한 몫 하여, 나를 모델로 촉발된 ‘박물관 석판화 교실 만들기 프로젝트’ (유료로 전환하려는 야심찬 계획)은 공전에 공전을 거듭, 결국 3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내가 싱가폴로 떠나던 시점까지도 전혀 아무런 세부 계획이 세워지지 않고 있었다. 몇 명 안 되는 스태프들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고 전혀 잔소리 안하고, 심지어 이 ‘검은 새’ 프린트들을 박물관에서 전시까지 해주었으니 나로선 그저 고마운 마음 뿐.


그래서 사실 나도 되도록이면 박물관 그리고 철수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나중엔 일주일에 한 번, 몇 시간 밖에 머무르지 않았고..그래서 ‘검은 새’가 완성되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철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철수의 판화. 흑인 소녀의 앞에 쌓여있는 것은 살찐 고구마 더미.



철수는 무뚝뚝하지만 사려 깊고, 자신이 하는 작업에 스스로 감사하는, 노년으로 접어드는 그러나 무지하게 굵은 팔뚝의 강건한 흑인 아저씨. 그의 환경에서 불가능에 가까웠던 미술 공부를 어렵게 한 그는 목화를 따며 고생 고생으로 아홉 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모티브로 흑인들의 가장 낮은 삶에 대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철수가 작업하고 전시하는 것을 보노라면, 뭐랄까, 진정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겉멋들지 않고, 요란한 이론을 떠들지 않으며, 스스로 즐거워하는 그림.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예술.


어쨌든 유쾌하고 매사를 대충 대충 처리하는 스타일 - 잉크는 언제나 반쯤 굳어있고, 아라빅 검이며 송진통은 제자리에 있은 적이 없으며, 산이 섞인 검을 그냥 손바닥으로 쓱쓱 바르는 걸 보고 기절. 그래도 그의 판화는 정확하게 나오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해…- 이야기의 반 이상이 농담이라, 도대체 어디까지 실실 쪼개며 들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때가 많았다.
그의 노래하는 듯한 블랙 액센트를 알아듣는데 꽤 시간이 걸렸지만,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콩글리쉬에 괴이한 영국 액센트가 짬뽕된 나의 얼치기 미국식 영어를 알아듣는 철수가 더 장한 것이 아닐런지.


시간이 가면서 ‘검은 새’의 이야기 윤곽이 잡혀가고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프린트가 쌓여가니, 철수는 자기가 더 흥분하면서 기대하는 듯 하였다. '검은 새'가 이렇게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을 보면 굉장히 기뻐할 것이다. 책을 받아든 철수의 얼굴이 그려진다.


어딜가나, 작업을 할 수 있고, 작업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무엇이 되었든 작업에 대한 열정에서, 그 흥미로움에서, 그 살아있는 눈빛으로 서로 말없이 공감하고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거기에서 서로에게 힘을 얻는다.






>나를 너무나 고생시켰던 오래된 석판화 프레스. 요즘 프레스 같이 쉽게 돌아가지 않아 내가 한번 찍을라치면 프레스 휠에 대롱 대롱 매달려야 했다. 한번 찍고 나면 비오듯 흐르는 땀.







>이렇게 두터운 돌덩어리- 다음 판화를 찍으려면 성긴 돌가루를 위에 뿌리고 이미지를 모두 갈아내야 한다. 평생을 작업하면 이 돌덩어리가 다 닳을까.







>찍은 판화를 말리는 건조대







>인쇄 역사 박물관의 홍보용 브로슈어에 나란히 출연한 철수와 나.
  *명백한 연출 사진의 증거들:
        -석판의 잉크는 노란색인데 롤러는 아주 깨끗하게 반짝거리고 있음.
        -롤러 가는 방향에 철수가 손가락을 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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