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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원 화실: 열린 어린이 서평


열린어린이 2009년 3월호에 실린 서평 바로 가기

전문가 서평:

마음 그리기
                                                        - 주진우/열린어린이 2009년 03월호

나의 명원 화실. 제목에 끌렸다. 뭔가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 선뜻 손이 갔다. 결과적으로 말해, 이런 예감은 빗나갔다. (아마도) 작가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만들기는 했겠지만, 그 시절을 아련하게 추억하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작가를 만든 것에 대한 일종의 자서전이라고나 할까.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자기 고백이다.

고등학교 때까지야 미술 수업 시간이 있었으니 그림 아닌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나는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다. 한데 얼마 전에 집 옥상에 올라갔다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늘 보던 먼 겨울 산의 실루엣을 보다가 갑자기 그것을 그려 보고 싶어졌다. 짧았지만 아주 강력했다. 산과 산, 그리고 그들이 겹치는 부분의 서로 다른 채도가 묘하게 나를 끌었다. 몇몇 사람에게 그 느낌을 얘기하긴 했지만 결국 그리진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지인들 모임에서 갑자기 내 옆에서 얘기하고 있던 친구의 얼굴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처음으로 얼굴 스케치란 걸 해보았다. 그리고 보니 우스꽝스럽기만 할 뿐 비슷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한 것은 스케치만이 아니었다. 불과 몇 분의 짧은 스케치를 위해서 난 ‘처음으로’ 그 친구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코가 커서 깜짝 놀랐다.

지금 쓰고 있는 서평 형식의 이 글도 그렇지만, 난 늘 남의 것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주로 남의 것을 들여다보며 살 것이다. 그런 다음 이러쿵저러쿵 말을 붙인다. 하지만 부럽게도 작가는 남이 들여다볼 글과 그림을 창조한다. 창작자의 자기 얘기, 이 책이 그렇다.

초등학교 여자아이인 ‘나’는 이른바 ‘교실 뒤에 붙는 그림’을 그릴 줄 안다.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집 앞에서 ‘명원 화실’이라는 간판을 보고 ‘진짜 화가’를 만나기 위해 화실을 다니기 시작한다. 자신의 그림 실력에 우쭐해 있던 ‘나’는 ‘진짜 화가’ 앞에서 그림 실력을 뽐내 보지만, 화가의 반응은 신통치가 않다. 연필로 바가지, 해바라기 따위를 그려 보라고 할 뿐이다. ‘내’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동안 ‘진짜 화가’는 시시콜콜 그림 지도를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 그러는 사이 ‘나’의 그림 도구는 연필에서 물감으로 바뀌고, 마침내 ‘진짜 화가’와 야외 스케치를 나가게 된다.

어느 겨울 생일날 ‘나’는 ‘진짜 화가’로부터 생일 카드를 받는다. 카드에는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카드를 본 순간,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펑하고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를” 듣고, 목이 따끔따끔하고 가슴이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동안 화실에 가지 못하던 ‘나’는 화실이 화재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화실로 달려간다. ‘나’는 모든 것이 타 버린 화실 앞에서 멍해진다. 불타서 거뭇한 화실 벽을 보고 마음이 쓸쓸해질 때마다 ‘나’는 화가와 야외 스케치를 나갔던 연못가에 가서 그림을 그리다 온다.

글로만 친다면, 구성의 짜임새도 조밀하지 못하고 스토리도 흥미진진한 것은 아니다. 줄치며 읽을, 마음에 팍팍 꽂히는 감동적인 문장이 수놓아져 있지도 않다. 그러나 길지 않은 이 책안에는 생각해볼 거리가 여럿이다.

우선, ‘그린다’는 것은 뭘까. 작가는 화가의 말을 빌려 “세상을 뚫어지도록 열심히 살펴보”고 “그렇게 열심히 살펴본 것이 내 마음속에 옮겨지면, 그걸 조금씩 조금씩 그려나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심히 살펴보는 일’과 그것을 ‘자기 마음속에 옮겨오는’ 일이다. 다시 말해, 그린다는 것은 대상의 ‘신호’를 마음속에 감지해 표현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신호는 열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아쉽게도 이 책은, 대상의 어떤 신호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있지 않다. 자기 마음에 꽂히는 그 신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언가 자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이겠다. 그것은 아마도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거나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무릇 모든 예술은 ‘이런 나를 이해해 달라’는 몸부림이고, 예술 감상이란 이런 몸부림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겠다. 양자의 상상력이 소통하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되는 이러한 과정이 이른바 미적 체험의 중요한 한 요소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화가의)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대상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그리는 것을 넘어, 내 쪽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외부의 대상이 만나는 과정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감수성’에 대한 훌륭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자기 외부의 대상이 보내는 신호를 잘 감지하는 능력을 우리는 ‘감수성’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때때로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평하면서 은연중에 그것을 어떤 사람의 타고난 능력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감수성은 대상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떤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의 얘기가 그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아닌 것’과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은 이런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한 아이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 실력에 우쭐대던 아이가 자신을 ‘지켜봐 주는’ 선생을 만나 “열심히 들여다보”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마침내 그림을 보며 “목이 따끔따끔”하고 가슴이 아픈 경험을 하게 되면서 독립적인 화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이 책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아이의 성장에서 ‘진짜 화가’와의 관계는 핵심적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글보다는 그림 쪽에서 더 잘 드러난다. 노란색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던 아이(4~5쪽)에게 긴 머리에 빵모자를 눌러 쓴 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진짜 화가’는 시쳇말로 ‘로망’이다. 그것이 ‘로망’이기에, 긴 다리를 꼬아 앉은 채 눈을 내리깔고 아이를 보고 있는 화가의 모습은 범접하기 힘들 만큼 권위적이다(8~9쪽). 화가는 칭찬 받을 작정으로 내민 아이의 그림을 못 본 체하며 쌩 나가 버린다(12~13쪽). 아이는 “열심히 들여다보”라는 화가의 말을 들은 뒤 꽃과 대결이라도 하듯이 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16~17쪽), 화가의 방에서 화집들을 들춰 보며 자의식을 키운다(20~21쪽). 화가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뒤편에 서서 이를 지켜본다. 이 때 화가의 파이프에서 나온 담배 연기는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가는 관심처럼 아이의 머리 위로 스며든다(30~31쪽). 마침내 연못에서는 화가와 나란히 앉아 연못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34~35쪽).

성장의 절정은 아이가 화재로 사라진 화실 앞에 선 장면이다(42~43쪽). 진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는 화실 쪽은 그 부재를 짙은 상실로 보여 주고 있고, 그 절망이 얼마나 컸던지 아이를 드러내던 ‘노란색’ 줄무늬 옷도 짙은 보라색으로 뭉개져 있다. 이 장면이 성장의 절정을 나타내 주는 것은, 자기를 이끌어 주던 ‘스승’과의 단절을 통해서만이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배낭에 붓 몇 자루를 넣고 불타 버린 화실 건물을 나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독립적인 한 인간(화가)의 탄생을 은유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46~47쪽).

본문이 끝나고 속표지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장엔 ‘진짜 화가’가 선물한 그림 속에 아이와 화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관계의 단절과 독립을 통과한 뒤에라야 ‘나란히 한 곳을 바라보는’ 대등한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물론 마음속에서이다.)

이수지의 그림들은 의식적으로, ‘그렸다’는 느낌을 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상황과 심리를 잘 표현하면서도 ‘정말 똑같이 그렸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이건 그린 그림이야’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그림들이다.(연못 속 낙엽과 물고기를 그린 그림을 보고 우리 아이는 낙엽 모양의 그림물감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대상을 충실히 따라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 줄 이유는 없다. 그림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저 ‘그림’인 것이다. 대상과의 교감을 통한 마음을 그린, 그런 ‘그림’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책 읽기란 작가가 그리는 파문에 자신의 파문을 대어 보는 일이다. 저쪽의 신호 한 조각이 나의 신호 한 조각과 만나는 일이다. 어떤 이의 상처와 신음이 내 마음을 저리게 할 때도 있다. 숭고함이 나를 숙연하게 할 때도 있고, 아름다움이 나를 벅차게 할 때도 있다. 비단 책과 그림뿐이겠나.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가 그럴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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